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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쿠바의 길 : 유기농업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5:20
    • 조회 445
    쿠바의 길 : 유기농업
    |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 / 환경정의 이사장


    지난해 말 8박10일의 여정으로 두번째 쿠바 유기농 연수여행을 다녀왔다. 2003년 5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 유기농대회(27개국 600여 전문가 참석) 참가차 방문한 이후 10년만이다. 대산농촌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명의 연수단 지도교수 자격이었다. 2003년에는 오재길, 정상묵, 이상국, 이태근 등 명실공이 대한민국의 제1세대 유기농운동 선구자들과 함께 한 순수 자발적인 자비여행이었다.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사례에서 지구촌과 인류의 미래를 투시해 보고,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현재와 미래를 개척하는데 교훈과 방도를 찾아보자는 뜻은 그때나 이번이나 똑같았다. 다만 2003년에는 세계 유수의 생태학자 및 지도자들과 함께 쿠바 유기농업의 초기 10년사를 돌아보고 평가했었다. 2012년 유기농 연수는 그 후 10년의 성과를 점검하고 향후의 발전방향을 더듬어 보려는 실무 실천가들과 함께 한 재점검의 기회였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시찰 가능성

    물론 풍토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 및 발전도가 서로 다른 조건의 농법(農法)이 꼭 같을 수가 없다. 더욱이 시공(時空)상의 제약과 언어 및 인식의 한계로 연수자들의 시찰 결과 역시 십중팔구 장님들의 코끼리 만지기식 평가가 불가피하다. 그래서 2003년(김성훈 등), 2004년(김완배 등), 2006년(최양부 등), 2011년(박민수 등), 2012년(박진도 등) 팀들의 인식과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번 대산농촌문화재단 연수단원들간에도 인식과 평가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시찰팀마다 인식과 평가의 결과가 다르다고 하여 서로 비난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시찰한 시기와 대상, 그리고 시각(관점)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또 앞에서 지적한 제약조건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은, 유기농업이야말로 당대 우리 지구촌의 당면한 기후변화․환경생태계 악화․국민건강과 식량문제의 위기 해결에 가장 강력한 대안이라는 사실이다. 현 단계에서 그것은 차라리 진리라고 말해야 옳다.
    다시 찾은 쿠바는 지난 10년 사이 아바나와 그 인근지역에 한정되었던 특유의 저투입·저탄소·저비용·저가격의 도시유기농법의 전개방식이 전국적인 근교농업으로 확대 발전되고 있었다. 1991년 쿠바가 유기농정책을 공식화한지 20년만에 사람이 모여 사는 거의 전 지역에 걸쳐 저비용 → 저가격 체제의 유기농법과 자원순환농법, 그리고 전 국민의 유기농 생활화로까지 발전되어 있었다. 새삼 별도의 유기농 식품 인증제가 시행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유기농업은 쿠바에 있어서 여러 대안 중 하나의 농법이 아니라, 쿠바 농법 전부라 말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 생태, 인간생활 모두이었다. 흙과 땅을 살리고, 강도 하늘도 살리며, 농민과 소비자국민을 모두 살리는 쿠바가 살아가는 길이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유기농법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로 1991년 식량, 석유, 화학비료, 농약 등 각종 필수품 수입과 무역행위가 불가능해지자 “평화시기의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거국적으로 유기농정책을 전개하였다. 국유화했던 관행농업 토지를 농사를 지으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소규모 가족농업 또는 신용서비스 협동조합, 주식회사형 협동조합, 그리고 국영협동조합 등 다양한 형태로 경영권을 분양하여 경작할 수 있게 하였다. 그 직접적인 동기는 미국의 경제봉쇄 조치와 구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인해 쿠바경제와 국민생존권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 카스트로는 이미 1967년부터 대학 졸업생들에게 세계적으로 농약피해의 위험을 경고한 레이첼 카이슨 여사의 명저, <침묵의 봄 (The Silent Spring)>을 선물하고 있었다. 쿠바가 경제봉쇄 사태에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흔적은 여러 사례에서 발견된다. 친환경적인 유기농법의 전면적인 시행과 동시에 또는 그에 앞서서 경제, 사회, 과학, 기술, 토지정책 등 제반 분야에서 개혁조치를 단행하고 과학기술 측면에서 유기농업의 실행기반을 닦아두고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임에도 사적 경영형태의 개별 가족농과 각종 인센티브제에 입각한 협동경영체제로 개편하고 지역자원의 재활용 순환농법 교육을 권장하며 조상대대로의 전통농업기술과 자재를 발굴하여 현대적인 생물학적 기술에 접목시키는데 이른바 21세기형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신 유기농법을 적극 개발한 것이다. 도회지의 유휴공지엔 토상(土床) 농법을 도입하고 농가와 농장마다 지렁이 분변토와 유축(有畜)농업 퇴비로 흙을 새로 만들고 농장 또는 농가 단위로 농림축산물 부산물과 각종 미생물 및 천적을 개발 활용하는 자연순환형 생태농법을 적극 보급하였다. 쿠바의 모든 농업(연구)기관이 총동원되어 환경도 살리고 생산성도 높이는 생태농업기술과 자재개발에 앞장섰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신기술, 신자재라 하더라도 농가들이 현장에서 써보고 효험이 좋다고 받아들일 때에야 그 기술개발자에게 응분의 보상이 주어졌다.

    여성이 앞장선 쿠바의 유기농 혁명

    특히 쿠바의 어머니와 여성을 유기농 운동의 최선두에서 핵심요원으로 활동하게 하였다. 건강한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건강한 자녀들을 키워냈듯이 쿠바 여성들은 다시 쿠바의 대지(大地)를 젖과 꿀이 흐르는 유기농업으로 바꾸는 국가적 대개혁 사업에 앞장 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학교 이상 학생들에게는 친자연적 영농체험활동을 학습과정에 반영, 국민교육을 적극적으로 폈다. 2003년 초기까지 쿠바 유기농업 총책임자인 농업부 차관이 여성이고 중앙 유기농업연구소장도 여성이며 유기농 관련 각종 연구소와 실행기관의 요직을 온통 여성들이 차지했던 배경이 그러하다. 건강한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도시와 근교 유기농업 역시 여성들이 앞장서야 건강한 국민을 키울 수 있다는 카스트로 특유의 선전 선동의 결과였다.
    이렇게 온 국민이 한 덩어리로 나선 쿠바의 유기농 실험은 예상을 뒤엎고 크게 성공하였다. 2003년 세계유기농대회 무렵에는 광의의 식량자급률이 유기농업 정책 시작 이전의 43%(1990년) 보다 훨씬 높은 90%대의 수준을 달성했다. 다만, 협의의 쌀 보리 밀 콩 등 밥상용 식량(곡물)의 수급통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공개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공통적인 “식량통계=국가안보”라는 인식이 아직도 쿠바 당국자들에게 고착되어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같은 시기에 똑같은 경제적 어려움, 즉 미국 등 서방세계의 경제봉쇄와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겪은 바 있는 북한에서는 시나브로 200여만 명의 생명이 기아로 쓰러진데 비하여, 쿠바에서는 최소한 굶어 죽는 사람이 발생하지 않았다. 또한 육류 위주의 식생활 패턴이 유기농산물 중심으로 바뀌어 짐에 따라 국민건강 수준도 현저히 상승하여 병원 출입 환자 수는 30%나 줄어들고 영아사망률이 세계 제2위로 크게 낮아졌다. 미국 등 서구사회의 고질적 현대병인 비만증 환자가 쿠바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 역시 특이한 변화이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산림 등 녹색지대 면적이 현저하게 늘어나고 도시환경 생태계가 다시 살아났다.
    이같은 사실은 적어도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린 2003년까지의 성과였다. 그 후 쿠바가 생태도시, 친자연, 친환경, 천혜의 관광천국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새로이 드높임에 따라 2005년부터 관광수입이 국가 제1의 수입원이 되면서 때마침 남미 등 세계 여러 국가와의 직간접 무역거래가 빈번해짐에 따라 쌀과 밀, 육류 등의 식량수입이 은밀히 늘어났다. 역설적으로 쿠바의 외화가득률이 높아지자 식량자급률이 떨어지고 2003년 목격했던 전 국민의 유기농업화에 대한 열정도 낮아지는 것 같다는 쿠바 지인의 귀띔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10년 사이 아바나에서 시작된 도시 및 근교농업은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었고 화학비료나 농약 대신 현대화된 토착 생산자재의 이용면적이 크게 늘어나 있었다. 전국적으로 식용농산물 재배면적의 70% 이상이 토착 미생물과 퇴비, 분변토, 천적 등 친환경 농자재로 대체되고 있었다. 다만 사탕수수 등 가공수출용 농작물 생산의 대형농장(프란테이션)까지에는 아직 유기농업의 열기가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탠포드大 “쿠바 유기농업은 인류의 위대한 희망”

    1992년 미국의 스탠포드대학 조사단은 비상조치의 시작 초기 그 성공가능성을 의심하며 “인류 역사의 최대의 실험”이라는 조사보고를 발표하였다. 사실 열대지방의 쿠바가 어떻게 유기농법으로 환경생태 보전과 생산성 향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낼 수 있을까는 세계 전문가와 정책가들이 모두 반신반의한 사항이었다. 지금까지도 일반통설은 생태보전형 유기농업을 추진할 경우 전반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반면 생산성향상을 위한 관행농법을 할 경우 생태계를 오염시킨다는 것이 상식이었다. 10여년의 시험기간이 지난 2002년 쿠바의 유기농업 성과는 이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그간의 세속적인 인식이 얼마나 현상 고착적이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스탠포드대학교 조사단은 마침내 2003년 세계유기농대회 때 배포한 쿠바의 지속가능농업 보고서(2002)에서 쿠바 유기농업의 성공사실을 가리켜 “인류 미래의 위대한 희망”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세 번째의 보고서가 필자 일행이 방문했을 때 인쇄 대기중이라는 설명을 듣고 정치·경제환경과 발전도가 달라진 2012년의 심층 진단평가가 어떠할지 못내 궁금해졌다.
    쿠바의 유기농업은 단순히 무농약·무화학비료라는 소극적 영농 개념이 아니다. 자연과 사회 환경의 지속적 순환과 발전을 가능케 하는 한 단계 높은 지속가능한 현대 생태문명체제를 이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인류문명 발달사에 있어 아주 큰 의미를 뜻한다. 즉 자원의 지역내 순환과 이에 상응하는 생산․생활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생태계의 지속성(sustainability)을 확보하고 농업생산성 향상 및 생활양식의 전환을 동시에 이룬 “늘푸른 혁명”이라는 사실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경제봉쇄조치로 인해 쿠바의 일상생활은 아직 초라하다. 그러나 국민 전반의 식생활문화, 그리고 환경생태계와 조화를 이룬 생태적 문명수준은 확실히 현대 인류사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70년대는 범지구적으로 농약과 화학비료가 뒷받침하는 종자혁명에 의한 관행농법이 범세계적으로 이른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라 하여 일차적으로 식량증산 목적에는 성공한 듯 했으나 인류의 건강과 환경생태계를 파괴하는 지속불가능한 “검은(black) 혁명"이 되고 말았다는 스탠포드대학 보고서 주장은 경청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 대안으로서 증산도 이루고 생태계도 보전하는 쿠바의 유기농업 성공사례는 그래서 “푸른 혁명(Blue Revolution)"이라고 부르고들 있다.
    그 성공요인을 정리해 보면, 첫째, 사적 경영을 허용한 가족농 중심의 적절한 토지개혁, 둘째, 직거래 단거리 유통 중심의 시장개혁, 셋째, 농업생태학적인 흙살리기운동으로서 지렁이 분변토, 토상농법, 각종 토착 미생물과 생약 및 천적의 획기적인 개발 보급, 넷째, 유축농법에 의한 농가현장에서의 분뇨 및 부산물 자원의 순환농법과 과학기술에 기반한 윤작·간작·휴경작 농법의 정착, 다섯째, 전통농업 기술 및 자재를 생물학적 현대과학기 과 성공적으로 접목한 점, 끝으로, 농민 참여하의 현장 연구실험과 인센티브 부여 등을 중시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최고 국정지도자의 깨어 있는 비전과 친자연·친환경에 대한 신념이 쿠바농업을 환경생태계도 살리면서 동시에 총생산량과 농가소득 향상을 도모하는 과감한 정책전환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비록 외부요인의 급격한 변화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오늘날 위기에 처한 인류문명사에 한줄기 희망의 등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 이 글은 한국농어민신문 2013년 1월 2498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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