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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한미 FTA로 농업을 살리자는 괴물 | 김성훈 지역재단 고문, 상지대 총장
    • 작성일2020/03/04 18:12
    • 조회 429
    한미 FTA로 농업을 살리자는 괴물
    김성훈 | 지역재단 고문, 상지대 총장


    요즈음 농업계에도 뉴라이트 선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엄동설한이어야 할 한반도에 때 아닌 더운 기온이 덮쳐오더니 이미 농산물시장 완전개방으로 꽁꽁 얼어붙어있는 농어민들에게 “한미 FTA 타결로 농업의 선진화를 이룩하자”는 기상천외한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시민운동으로 명성을 떨친 어느 유명 인사가 이를 선창하자 기라성 같은 농업계 인사들이 그 내막도 잘 모르고 너도나도 멀쑥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선진화 농업포럼’이라는 괴물이 그것이다. 

    한미FTA 반대하면 모두 좌파?

    사학법도 다시 고쳐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금강산 평화관광과 개성공단도 문을 닫아 남한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한미 FTA 체결로 한국농업의 선진화 길을 찾자는 주장들이 이른바 선진화와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단체들의 단골메뉴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틈타 보수 우파를 자처하는 신흥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보수언론들이 이들의 주장을 연일 보도해주니 더욱 신이 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인사가 공공연히 “좌파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니까 우파들은 찬성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언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386 막료들을 좌파라고 그토록 몰아 부치더니, 한미 FTA를 “묻지마”식으로 추진하니까 이제 노대통령을 우파로 찬양하는 꼴이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한민국의 선량한 모든 농민들은 모두 좌파로 낙인찍힐 판이다. 미국과 FTA를 추진하다가 중단한 스위스, 태국 등 34개국도 결국 좌파정부란 말이 된다.
    15년전 필자와 우루과이라운드 비상대책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그 분은 최근 농업계 인사들을 만나 선진화 농업포럼 창립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필자 이름을 이래저래 인용하고 다닌다고 한다. 혹시 그로인해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가 발생할까 우려되어 이 기회에 내 입장을 분명히 밝혀 둔다. 각종 선진화포럼의 모체인 선진화포럼 본부를 만들 때 필자도 공동대표로 초청된 바 있다. 그러나 하는 일과 내용이 너무 수구적이고 진정성이 의심되어 필자는 며칠 안되어 정식으로 대표자 및 참여자 명단에서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빠져나왔다. 지난해 말에 있었던 일이다. 다만 그동안의 인간적인 정분 관계를 하루아침에 떨쳐 버릴 수 없어 계속 침묵해 왔는데 이제 100% 시장개방으로 몸살을 앓다 못해 죽을 지경에 이르른 농업계에 까지 촉수를 뻗치면서 보잘 것 없는 필자의 이름과 논점을 인용한다고 한다. 혹시 한미 FTA 협상을 조건부로 시비하고 있는 필자마저 좌파라고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하여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평생 좌파도 우파도 중도도 아니다. 꼭 파를 갈라 낙인찍으려면 “농민, 농업, 농촌파”라고 불러 달라. 나는 실사구시 정신과 방법으로 우리나라 농촌과 민생을 살리고 경제정의와 사회정의 그리고 환경정의를 이 땅에 구현하자고 주장하는 한낱 백면서생 민생주의자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권주자 ‘FTA관‘ 따져봐야

    이쯤해서 소위 우파, 즉 뉴라이트나 선진화그룹이 연연해 마지않는 거대야당의 대권주자들의 FTA관이 어떠한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행여 그들 중 한 분이 차기 대통령으로 뽑힌다면 어떤 농업정책을 펼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무지막지하게 지지하는 주자는 단연 전경기도지사 손학규씨를 꼽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동북아경제권의 허브로서 미국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에 찬성한다. 변함없는 진리는 ‘열고 개방해서 경쟁하지 않으면 살 길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이미 우리 경제가 99.8%나 개방되어 있는데 아마도 미국식 경제체제에 동조화하자는 한미 FTA를 개방문제와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면에선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과 다름없다. 이명박씨는 FTA는 추진하되 농업과 서비스 등 경쟁력 취약분야는 개방을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근혜씨는 직접 미국에 가서 한미 FTA 추진시 양국에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없도록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반면, 여당 주자를 자처하는 김근태 전의장은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며, 성공하더라도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충격이 오게 해선 안된다.”라고 말한다. 반면, 정동영씨는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하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배짱과 각오로 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천정배씨는 “각계각층의 여론을 충실히 수렴해 국민적 공감대를 아우르며 협상을 추진하되 국익과 민생 우선의 전략이 관철될 수 없다면 차기정부로 넘길 수 있다.”는 사실상 반 FTA 주장을 펴고 있다. 

    제발 심사숙고, 중지 모으길

    문제는 한미 FTA 협상이 타결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강박증에 사로잡혀 미국이 정해 놓은 시한에 쫓겨 돌이킬 수 없이 막대한 국익과 민생파탄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재삼재사 숙고하고 중지를 모아 추진해야 한다. 우리의 목적과 요구가 관철되지 않거나,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을 지킬 수 없을 때는 협상중단도 불사해야 한다. 
    평소 사회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온 법정(法頂) 큰 스님은 법회를 열어 “한미 FTA를 막는 것은 이 시대의 사명”이라는 법문을 발표했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우리 농업을 말살하려는 한미 FTA 체결은 끝까지 막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정작 각종 지위와 연구비와 수당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많은 농업연구단체와 우리 농학계에서는 농민들이 한미 FTA 협상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다가 얻어맞고 잡혀가는 참상에 대하여 몇몇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짐짓 못 본 채 꿀 먹은 벙어리들이다. 하물며 일부 농업계 인사들이 속사정을 몰라서 그랬겠지만 농업 확인사살의 대열에 줄을 대고 서 있는 모습은 차라리 소가 웃을 일이다. 

    *2007년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