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농촌 | 허승욱 단국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08
- 조회 518
진짜 농촌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어느 학생에게 물었다. 농촌이 뭐냐고 말이다. 논·밭이 많은 곳, 벼나 돼지를 키우는 시골이라 답한다. 농촌과 도시가 뭐가 다르냐 물었다. 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농산물을 저장하는 창고 같은 것이 많고, 도시보다는 공기가 좋기는 하지만, 농촌하면 돼지 똥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한마디로 ‘헐~’ 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렇게 밖에 농촌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며, 농촌에 대한 내 생각을 한참동안 읊조린다. 이해는 됐다고 연신 고갯짓을 하는데, 그 학생의 표정은 어째 심상치 않다.
‘농촌=농업을 하는 곳’ 전락
농촌,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3조 제5호에서는 농어촌지역을 읍·면의 지역과 이외의 지역 중 그 지역의 농어업, 농어업 관련 산업, 농어업인구 및 생활여건 등을 고려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고시하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현행 법적으로만 본다면, 농촌은 농업, 그리고 농업과 관련된 산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사람보다는 ‘업(業)’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하면, RPC(미곡종합처리장)나 축사 같은 것밖에 연상되지 않는 것이며, 농촌을 단순히 식량생산공장 정도로 인식하는 무식의 소치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법적 정의만 탓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 수준이 농촌은 자연과 더불어 경제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생각에 앞서 농촌은 그저 농업을 하는 곳으로 전락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방치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나는 농촌하면, 풍요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연과 먹거리도 풍요롭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풍요로운 곳이다. 할매들이 정성스레 담가놓았을 간장, 된장이며, 한 겨울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감도 생각난다. 봄이면 가재 잡느라 한나절을 뒤지고 다녔을 시냇가도 있고, 몇 백 년도 넘었을 것 같은 노거수들과 논일을 잠시 접은 할배들이 한 땀을 식히고 있을 그 넓은 그늘도 생각이 난다. 홍성 문당리의 농부 주형로는 말한다.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이 고양이와 마주했을 때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가족과 효를 배운다고 말이다. 농촌은 자연이 선물한 풍요로운 학교다. 그런데 이 선물을 내팽개쳐 둔지 너무 오래다. 농촌을 단순히 산업적이며, 경계영역적으로만 보아서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담아낼 수 없다.
또한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보수적인 상상력만으로는 지금의 농촌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농촌에 대한 전국민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촌다움 위한 농민 변화 절실
농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전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농촌의 주인이자 이 땅의 지배자인 농민들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페인트 색이 저 색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홍색과 파란색 지붕 일색인 농촌, 잠시 동안은 고향의 냄새로 여겨지다 이내 고약해지는 소똥, 돼지똥 냄새, 마을 어귀 성황당이 무색하게 전봇대에 걸려 나부끼는 비닐들, 마을 한 켠에서 녹슬고 있는 경운기와 이리 저리 나뒹구는 농약병... 이것이 우리의 농촌 풍경이어서야 되겠는가.
얼마 전 도시에 사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귀에 꽂힌다. “나는 농촌만 가면,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다 똑같아서 말이죠.” 우리 농촌이 얼마나 농촌답지 못했으면, 얼마나 개성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농촌을 우리 스스로 쌀공장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우리 마을 가꾸기부터 시작을
농촌은 마을이다. 충남에만 해도 4000개가 넘는 마을이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잘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농촌다움으로 되돌아가는 지름길이다. 마을은 내 삶터이고, 일터이며, 쉼터이기 때문이며, 누가 대신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부여에 귀농하신 어떤 분의 이야기는 우리가 따라 배울 귀감이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을 하천을 청소하고, 여기 저기 내걸려 있던 비닐을 걷어내고, 마을 입구에 꽃도 심었단다. 그것도 3년 넘게 쉬지 않고 했단다. 그랬더니 한 분 두 분 같이하는 분들이 생기고, 마을이 아름다워지니 도시사람들도 찾아 왔단다.
작은 일을 잘하는 것이 큰 일도 잘하는 법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당장 우리 마을을 둘러보고 내가 해야 할 작은 일을 찾아보자. 행복하지 않을까?.
이 글은 2013년 12월12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허승욱 단국대 교수
어느 학생에게 물었다. 농촌이 뭐냐고 말이다. 논·밭이 많은 곳, 벼나 돼지를 키우는 시골이라 답한다. 농촌과 도시가 뭐가 다르냐 물었다. 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농산물을 저장하는 창고 같은 것이 많고, 도시보다는 공기가 좋기는 하지만, 농촌하면 돼지 똥냄새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한마디로 ‘헐~’ 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렇게 밖에 농촌을 이해할 수 없었겠지 하며, 농촌에 대한 내 생각을 한참동안 읊조린다. 이해는 됐다고 연신 고갯짓을 하는데, 그 학생의 표정은 어째 심상치 않다.
‘농촌=농업을 하는 곳’ 전락
농촌,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농어업·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3조 제5호에서는 농어촌지역을 읍·면의 지역과 이외의 지역 중 그 지역의 농어업, 농어업 관련 산업, 농어업인구 및 생활여건 등을 고려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고시하는 지역으로 정의하고 있다. 현행 법적으로만 본다면, 농촌은 농업, 그리고 농업과 관련된 산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사람보다는 ‘업(業)’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농촌하면, RPC(미곡종합처리장)나 축사 같은 것밖에 연상되지 않는 것이며, 농촌을 단순히 식량생산공장 정도로 인식하는 무식의 소치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법적 정의만 탓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 수준이 농촌은 자연과 더불어 경제와 문화가 어우러지는 곳이라는 생각에 앞서 농촌은 그저 농업을 하는 곳으로 전락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방치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나는 농촌하면, 풍요로움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자연과 먹거리도 풍요롭지만, 무엇보다 마음이 풍요로운 곳이다. 할매들이 정성스레 담가놓았을 간장, 된장이며, 한 겨울 가지 끝에 매달린 홍시감도 생각난다. 봄이면 가재 잡느라 한나절을 뒤지고 다녔을 시냇가도 있고, 몇 백 년도 넘었을 것 같은 노거수들과 논일을 잠시 접은 할배들이 한 땀을 식히고 있을 그 넓은 그늘도 생각이 난다. 홍성 문당리의 농부 주형로는 말한다. 병아리를 품은 어미 닭이 고양이와 마주했을 때 죽기살기로 싸우는 것을 보며 아이들은 가족과 효를 배운다고 말이다. 농촌은 자연이 선물한 풍요로운 학교다. 그런데 이 선물을 내팽개쳐 둔지 너무 오래다. 농촌을 단순히 산업적이며, 경계영역적으로만 보아서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담아낼 수 없다.
또한 ‘고향’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보수적인 상상력만으로는 지금의 농촌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농촌에 대한 전국민적인 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촌다움 위한 농민 변화 절실
농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의 전환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농촌의 주인이자 이 땅의 지배자인 농민들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페인트 색이 저 색밖에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홍색과 파란색 지붕 일색인 농촌, 잠시 동안은 고향의 냄새로 여겨지다 이내 고약해지는 소똥, 돼지똥 냄새, 마을 어귀 성황당이 무색하게 전봇대에 걸려 나부끼는 비닐들, 마을 한 켠에서 녹슬고 있는 경운기와 이리 저리 나뒹구는 농약병... 이것이 우리의 농촌 풍경이어서야 되겠는가.
얼마 전 도시에 사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귀에 꽂힌다. “나는 농촌만 가면,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다 똑같아서 말이죠.” 우리 농촌이 얼마나 농촌답지 못했으면, 얼마나 개성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농촌을 우리 스스로 쌀공장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
우리 마을 가꾸기부터 시작을
농촌은 마을이다. 충남에만 해도 4000개가 넘는 마을이 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잘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농촌다움으로 되돌아가는 지름길이다. 마을은 내 삶터이고, 일터이며, 쉼터이기 때문이며, 누가 대신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부여에 귀농하신 어떤 분의 이야기는 우리가 따라 배울 귀감이다. 아무도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을 하천을 청소하고, 여기 저기 내걸려 있던 비닐을 걷어내고, 마을 입구에 꽃도 심었단다. 그것도 3년 넘게 쉬지 않고 했단다. 그랬더니 한 분 두 분 같이하는 분들이 생기고, 마을이 아름다워지니 도시사람들도 찾아 왔단다.
작은 일을 잘하는 것이 큰 일도 잘하는 법이다. 그리고 모든 일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당장 우리 마을을 둘러보고 내가 해야 할 작은 일을 찾아보자. 행복하지 않을까?.
이 글은 2013년 12월12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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