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이후 농정 20년에 대한 성찰 |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 작성일2020/03/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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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 이후 농정 20년에 대한 성찰
|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20년 전인 1993년 12월 15일 UR 농업협상이 타결됐다. UR로 인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예외 없이 모든 농산물의 수입을 개방하게 됐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쌀시장 전면개방을 10년 유예하는 특례를 받았지만 나머지 농산물은 모두 개방하는 국가 초유의 ‘UR사태’를 맞이했다. 야당과 농민단체, 학계의 UR 반대집회는 연일 계속됐고, 김영삼 대통령은 쌀시장개방을 막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청와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 ‘농수산수석비서관’을 신설하고 UR 이후 농정을 청와대가 직접 챙겼다.
12월 23일, 나는 예상치도 못한 김영삼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UR 이후 농정(농림축수산과 해양정책)을 책임지는 농정수석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퇴임 시까지 4년여 동안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며 UR 이후 우리농정의 판을 새로 짜는 농정개혁을 이끌었다.
농정수석실은 농수산정책, 농어촌산업, 농어촌개발과 농어민복지를 담당하는 3명의 비서관을 두고 우리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범정부적인 ‘3농(업, 촌, 민)정책’을 추진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 순수 민간위원과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농어촌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UR 이후 농정목표와 과제에 대한 정책제안을 폭넓게 수렴했고, 이를 토대로 ‘농어촌발전대책 및 농정개혁추진방안’을 새로 수립 추진했다.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농어촌특별세(농특세)’를 신설했고, 농정추진상황 점검과 평가를 위해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농정개혁추진회의’를 대통령 주재로 매년 개최했다.
농산물 시장개방 갈수록 심화
김영삼 정부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20년 동안 농산물 시장개방은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UR시대’를 넘어 ‘FTA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확대 심화됐다. 한·EU, 한·미 FTA에 이어 이제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도 FTA를 마치고 한·중 FTA로 향하고 있고 TPP 참가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20년을 유예해온 쌀시장도 내년에는 전면 개방할 위기에 처했다. 그야말로 우리 농은 낭떠러지 끝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농정은 정부 따라 5년마다 경쟁력과 효율성강화를 위한 구조개선과 전업농 육성이냐, 아니면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가족농 보호냐를 오가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쌀 수매가격 인상, 부채감면과 직불제, 폐업보상 등 소득 보조적 정책이 늘어났고 농촌개발과 농민복지정책이 확대되고, 환경농업육성, 농업의 6차산업화와 융복합화, 식품산업진흥정책 등이 새로 추진됐다. 김영삼 정부를 시작으로 지난 20년 동안 200조원이 넘는 국민혈세를 농촌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의 형편은 나아졌고, 경쟁력은 향상됐고 가족농은 보호됐는가? 경쟁력은 향상되지 못했고,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후계인력이 없는 대부분의 가족농가들은 세대단절과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농업의 국민식량공급능력은 날로 떨어지고 이제는 대형유통기업과 수입상들이 국민의 먹을거리 공급을 책임지는 시대가 됐다. 농촌은 계속되는 인구감소로 지방자치단체의 구성마저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마을은 거대한 양로원 촌이 됐고, 고맙게도 동남아 등지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해체직전의 농가와 마을을 지켜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고는 사실상 고사했고, 미래 농업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한국농업전문학교(현 한국농수산대학)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민에 대한 기술지도 보급을 담당해야 할 지도기관들은 대부분 시장군수 뒤치다꺼리하는 행정기관으로 전락했다. 농협을 필두로 축협, 수협, 산림조합 등 협동조합들은 농어촌경제의 모든 돈줄과 인맥을 장악하고 있지만 농어민과 축산인, 임업인의 경제적 지위향상은 말뿐이고 경제사업은 시늉만 내고, 임직원들의 고액연봉 챙기는데 도움이 되는 돈 되는 장사에만 혈안이 돼있다.
오락가락 정책에 농업 벼랑끝
이런 참담한 현실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도 있다. ‘눈먼 정부 돈’을 따기 위해 개인이나 법인, 단체 또는 지자체를 상대로 사업계획서를 그럴듯하게 잘 꾸며주는 용역업체, 컨설팅업체들은 번창해 왔다. 농과대학 교수들은 넘쳐나는 연구비로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학술지 논문 건수 올리는 연구에 골몰해 왔다.
역설적으로 우리 농은 ‘농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앞세운 중앙과 지방의 정부관리, 공기업 임직원, 대학교수나 연구기관의 전문가, 용역업자, 농어민단체와 협동조합 임직원에게 붙잡혀 거꾸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해 왔다. 정부 재정으로 농에 투입된 돈이 농·축·수협을 통해 다시 도시로 역류되고, 수백, 수천억 원의 예수금을 도시지역 투자금융회사에 맡겨 이자 따먹기에 빠져있는 전국 시·군·읍·면의 농·축·수협을 이렇게 방치해 놓고 어떻게 농이 잘되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정부 지원은 농·축·수협의 배만 불리고 우리 농은 메말라 왔다. 그래서 일가 20년 전과는 비교하면 국민들의 우리 농을 보는 시각은 싸늘해 졌고, “밑 빠진 독에 물 붙기”라며 농에 대한 재정투융자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현실 직시…농정개혁 나서야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지난 정부의 실패한 농정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출범 초기 “농어민 손톱 밑의 가시를 뽑겠다”는 호기는 1년도 못가 간곳없이 사라졌다. 농협을 비롯해 손톱 밑의 가시들만 오히려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이명박 정부가 어렵게 결정한 농협개혁조치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농협에 휘둘리고, 있는 박근혜 농정은 분명 잘못 가고 있다. 창조농업, 국민공감농정, 행복농정, 스마트농정 등등 뜻 모를 정치구호만 요란할 뿐 지난 1년 동안 감동을 준 기억에 남은 정책이 있었는가?
박근혜 정부는 우리 농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농정에 깊게 박힌 가시들을 뽑아내는 농정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농협개혁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한다.
이 글은 2013년 12월2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
20년 전인 1993년 12월 15일 UR 농업협상이 타결됐다. UR로 인해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예외 없이 모든 농산물의 수입을 개방하게 됐다. 우리는 기적적으로 쌀시장 전면개방을 10년 유예하는 특례를 받았지만 나머지 농산물은 모두 개방하는 국가 초유의 ‘UR사태’를 맞이했다. 야당과 농민단체, 학계의 UR 반대집회는 연일 계속됐고, 김영삼 대통령은 쌀시장개방을 막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청와대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 ‘농수산수석비서관’을 신설하고 UR 이후 농정을 청와대가 직접 챙겼다.
12월 23일, 나는 예상치도 못한 김영삼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UR 이후 농정(농림축수산과 해양정책)을 책임지는 농정수석의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퇴임 시까지 4년여 동안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며 UR 이후 우리농정의 판을 새로 짜는 농정개혁을 이끌었다.
농정수석실은 농수산정책, 농어촌산업, 농어촌개발과 농어민복지를 담당하는 3명의 비서관을 두고 우리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범정부적인 ‘3농(업, 촌, 민)정책’을 추진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 순수 민간위원과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농어촌발전위원회’를 발족시켜 UR 이후 농정목표와 과제에 대한 정책제안을 폭넓게 수렴했고, 이를 토대로 ‘농어촌발전대책 및 농정개혁추진방안’을 새로 수립 추진했다. 이를 재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농어촌특별세(농특세)’를 신설했고, 농정추진상황 점검과 평가를 위해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두 참여하는 ‘농정개혁추진회의’를 대통령 주재로 매년 개최했다.
농산물 시장개방 갈수록 심화
김영삼 정부 이후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지난 20년 동안 농산물 시장개방은 한·칠레 FTA를 시작으로 ‘UR시대’를 넘어 ‘FTA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확대 심화됐다. 한·EU, 한·미 FTA에 이어 이제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도 FTA를 마치고 한·중 FTA로 향하고 있고 TPP 참가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20년을 유예해온 쌀시장도 내년에는 전면 개방할 위기에 처했다. 그야말로 우리 농은 낭떠러지 끝을 붙잡고 매달려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농정은 정부 따라 5년마다 경쟁력과 효율성강화를 위한 구조개선과 전업농 육성이냐, 아니면 농업의 다원적 가치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가족농 보호냐를 오가며 일관성 없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쌀 수매가격 인상, 부채감면과 직불제, 폐업보상 등 소득 보조적 정책이 늘어났고 농촌개발과 농민복지정책이 확대되고, 환경농업육성, 농업의 6차산업화와 융복합화, 식품산업진흥정책 등이 새로 추진됐다. 김영삼 정부를 시작으로 지난 20년 동안 200조원이 넘는 국민혈세를 농촌에 쏟아 부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농의 형편은 나아졌고, 경쟁력은 향상됐고 가족농은 보호됐는가? 경쟁력은 향상되지 못했고, 농민들은 고령화되고, 후계인력이 없는 대부분의 가족농가들은 세대단절과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농업의 국민식량공급능력은 날로 떨어지고 이제는 대형유통기업과 수입상들이 국민의 먹을거리 공급을 책임지는 시대가 됐다. 농촌은 계속되는 인구감소로 지방자치단체의 구성마저 어려운 지경이 됐다. 마을은 거대한 양로원 촌이 됐고, 고맙게도 동남아 등지에서 시집온 여성들이 해체직전의 농가와 마을을 지켜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고는 사실상 고사했고, 미래 농업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은 한국농업전문학교(현 한국농수산대학)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농민에 대한 기술지도 보급을 담당해야 할 지도기관들은 대부분 시장군수 뒤치다꺼리하는 행정기관으로 전락했다. 농협을 필두로 축협, 수협, 산림조합 등 협동조합들은 농어촌경제의 모든 돈줄과 인맥을 장악하고 있지만 농어민과 축산인, 임업인의 경제적 지위향상은 말뿐이고 경제사업은 시늉만 내고, 임직원들의 고액연봉 챙기는데 도움이 되는 돈 되는 장사에만 혈안이 돼있다.
오락가락 정책에 농업 벼랑끝
이런 참담한 현실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도 있다. ‘눈먼 정부 돈’을 따기 위해 개인이나 법인, 단체 또는 지자체를 상대로 사업계획서를 그럴듯하게 잘 꾸며주는 용역업체, 컨설팅업체들은 번창해 왔다. 농과대학 교수들은 넘쳐나는 연구비로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한 학술지 논문 건수 올리는 연구에 골몰해 왔다.
역설적으로 우리 농은 ‘농을 위하여’라는 구호를 앞세운 중앙과 지방의 정부관리, 공기업 임직원, 대학교수나 연구기관의 전문가, 용역업자, 농어민단체와 협동조합 임직원에게 붙잡혀 거꾸로 그들의 이익에 봉사해 왔다. 정부 재정으로 농에 투입된 돈이 농·축·수협을 통해 다시 도시로 역류되고, 수백, 수천억 원의 예수금을 도시지역 투자금융회사에 맡겨 이자 따먹기에 빠져있는 전국 시·군·읍·면의 농·축·수협을 이렇게 방치해 놓고 어떻게 농이 잘되기를 바랄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정부 지원은 농·축·수협의 배만 불리고 우리 농은 메말라 왔다. 그래서 일가 20년 전과는 비교하면 국민들의 우리 농을 보는 시각은 싸늘해 졌고, “밑 빠진 독에 물 붙기”라며 농에 대한 재정투융자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현실 직시…농정개혁 나서야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지난 정부의 실패한 농정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출범 초기 “농어민 손톱 밑의 가시를 뽑겠다”는 호기는 1년도 못가 간곳없이 사라졌다. 농협을 비롯해 손톱 밑의 가시들만 오히려 득세하는 세상이 되고, 이명박 정부가 어렵게 결정한 농협개혁조치하나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농협에 휘둘리고, 있는 박근혜 농정은 분명 잘못 가고 있다. 창조농업, 국민공감농정, 행복농정, 스마트농정 등등 뜻 모를 정치구호만 요란할 뿐 지난 1년 동안 감동을 준 기억에 남은 정책이 있었는가?
박근혜 정부는 우리 농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농정에 깊게 박힌 가시들을 뽑아내는 농정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농협개혁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줬으면 한다.
이 글은 2013년 12월26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