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내려놓기 | 허승욱 단국대 교수
- 작성일2020/03/05 16:25
- 조회 545
만나고, 내려놓기
| 허승욱 단국대 교수
내가 사는 충남에서 농업문제 열심히 잘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3농혁신’이다. 단번에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말이다. 어감도 센 감이 있지만, 처음엔 그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업, 어촌과 어민, 그러니까 ‘어’자는 어디 갔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3농어혁신’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3농은 농어업·농어촌·농어민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 아무리 이야기한들 ‘어’자가 빠져서인지 많이들 아쉬워들 했다. 홍길동 문패를 단 집에 홍길동만 사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어색했던 ‘3농혁신’ 걱정은 기우
그런 수산분야에서의 3농혁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추진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3년 전부터 시작한 ‘수산인들과의 대화’였다. 도 행정 중심으로 추진되던 정책 추진방식을 수산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보령에서 처음 시작된 그 자리는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 어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목탁이 굴러가듯 부자연스럽고 여느 관공서 행사에 가면 연상이 되는 형식의 기름기가 흘렀다. 참석한 사람들도 뱃일하러 가야 하는데… 왜 모이라고 하는 것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얼굴로 앉아있고, 내용도 제대로 갈무리되지 않은 채 ‘잘해봅시다’ 정도의 결의와 박수로 끝났던, 어설픔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다.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수산분야 도민참여예산제 주목
기우였다. 올해로 벌써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라는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다. 그래 무려 세 번이다. 내용도 ‘찾아가는 수산행정’ 그리고 ‘수산분야 도민참여예산제’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됐다. 특히, 참여예산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선호하고 추진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며, 행정 주도의 의사결정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베인 제도이기도 하다. 아직 걸음마를 걷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나고 내려놓기’라고 생각한다. 참여예산제, 그것도 15개 시·군과 살림을 같이 살고 있는 충남이라는 광역 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제를 실현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다.
농업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수산분야도 수백 가지의 정책들이 있고, 이 정책들은 모두 도에서 시·군 으로 다시 어촌계나 어촌으로 내려가는 하향식 집행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사불란한 정책 집행은 물론, 전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다지만, 문제는 투입 대비 산출로 따지는 효과성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한정된 예산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100원 투입해서 100원만 건져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100원 투자해서 10배, 100배의 효과를 어떻게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산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돼서는 안 되며, 제대로 된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 생산자와 행정의 고민이 모여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 불씨를 잘 살리기 위한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한다. 예산 집행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는 국민들의 쌈짓돈을 내 돈처럼 여기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예산의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쌈짓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바다와 어민들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것이 수산분야의 참여예산제였다고 생각된다. 부족하기 짝이 없고 동분서주했던 그런 시작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만나고 내려놓기’에서 찾았다.
지속 원동력은 ‘만나고 내려놓기’
우리는 늘 문제 속에서 산다. 문제가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이란 주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수록 꼬리를 빼서는 안 된다. 만나다보면 없던 정도 든다. 공문을 하달했다고 해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3농혁신, 그리고 수산분야에서 시작한 참여예산제가 참여와 의견수렴이나 하는 정도의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적지 않은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점과 어업정책 주체들의 의견을 모아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자. 이제 한 발 정도 뗀 것이다. 모두가 낯설고 어떻게 발을 떼야할 지 머쓱한 상황 속에서의 시작이라는 점에 또한 박수를 보내자.
이글은 2014년3월17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 허승욱 단국대 교수
내가 사는 충남에서 농업문제 열심히 잘해보자고 시작한 것이 ‘3농혁신’이다. 단번에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 말이다. 어감도 센 감이 있지만, 처음엔 그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업, 어촌과 어민, 그러니까 ‘어’자는 어디 갔냐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3농어혁신’이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3농은 농어업·농어촌·농어민을 줄여 부르는 말이라 아무리 이야기한들 ‘어’자가 빠져서인지 많이들 아쉬워들 했다. 홍길동 문패를 단 집에 홍길동만 사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어색했던 ‘3농혁신’ 걱정은 기우
그런 수산분야에서의 3농혁신은 생각보다 빠르게 추진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3년 전부터 시작한 ‘수산인들과의 대화’였다. 도 행정 중심으로 추진되던 정책 추진방식을 수산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풀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보령에서 처음 시작된 그 자리는 참으로 어색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 어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울 수 있겠는가? 목탁이 굴러가듯 부자연스럽고 여느 관공서 행사에 가면 연상이 되는 형식의 기름기가 흘렀다. 참석한 사람들도 뱃일하러 가야 하는데… 왜 모이라고 하는 것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얼굴로 앉아있고, 내용도 제대로 갈무리되지 않은 채 ‘잘해봅시다’ 정도의 결의와 박수로 끝났던, 어설픔 그 자체였다는 생각이다. 내년에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수산분야 도민참여예산제 주목
기우였다. 올해로 벌써 한두 번도 아니고 무려 세 번이라는 경험치를 축적하고 있다. 그래 무려 세 번이다. 내용도 ‘찾아가는 수산행정’ 그리고 ‘수산분야 도민참여예산제’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됐다. 특히, 참여예산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선호하고 추진하는 단골메뉴 중의 하나이다. 그만큼 지역주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며, 행정 주도의 의사결정에서 오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베인 제도이기도 하다. 아직 걸음마를 걷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만나고 내려놓기’라고 생각한다. 참여예산제, 그것도 15개 시·군과 살림을 같이 살고 있는 충남이라는 광역 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제를 실현한다는 것이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다.
농업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수산분야도 수백 가지의 정책들이 있고, 이 정책들은 모두 도에서 시·군 으로 다시 어촌계나 어촌으로 내려가는 하향식 집행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사불란한 정책 집행은 물론, 전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다지만, 문제는 투입 대비 산출로 따지는 효과성이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한정된 예산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100원 투입해서 100원만 건져도 다행이라는 생각보다는 100원 투자해서 10배, 100배의 효과를 어떻게 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산은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돼서는 안 되며, 제대로 된 불쏘시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에 생산자와 행정의 고민이 모여져야 한다. 한편으로는 그 불씨를 잘 살리기 위한 주체가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해야 한다. 예산 집행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는 국민들의 쌈짓돈을 내 돈처럼 여기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이기 때문에 예산의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쌈짓돈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바다와 어민들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것이 수산분야의 참여예산제였다고 생각된다. 부족하기 짝이 없고 동분서주했던 그런 시작이 지금까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나는 ‘만나고 내려놓기’에서 찾았다.
지속 원동력은 ‘만나고 내려놓기’
우리는 늘 문제 속에서 산다. 문제가 없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기에 삶이란 주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인 셈이다.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수록 꼬리를 빼서는 안 된다. 만나다보면 없던 정도 든다. 공문을 하달했다고 해서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3농혁신, 그리고 수산분야에서 시작한 참여예산제가 참여와 의견수렴이나 하는 정도의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3년 동안의 적지 않은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점과 어업정책 주체들의 의견을 모아낼 수 있는 틀을 만들어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자. 이제 한 발 정도 뗀 것이다. 모두가 낯설고 어떻게 발을 떼야할 지 머쓱한 상황 속에서의 시작이라는 점에 또한 박수를 보내자.
이글은 2014년3월17일 농어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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