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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쌀직불제는 복지시책이 아니다. | 정영일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 작성일2020/03/04 18:28
    • 조회 410
    쌀직불제는 복지시책이 아니다.
    정영일 | 지역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정부가 발표한 ‘쌀소득보전직불제 제도 개선(안)’이 숱한 논란과 거센 농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개선(안)은 올해로 3년째인 쌀소득보전직불제(이하 쌀직불제)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 개선을 위해 지난 10일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거쳐 오는 11월까지 국회 제출 등 입법절차를 추진한다는 일정 아래 마련된 것이다.

    농림부가 내놓은 개선(안)은 직불금 지급대상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과, 행정집행 실무에 관련된 사항 등 두가지로 요약된다. 지급대상 축소 내용으로는 ①약간의 예외를 두고 있지만 지급대상자와 농지를 2005~2007년 기간 중 1년 이상 쌀직불금을 지급받은 농업인과 농지에 한정함으로써 신규 진입농가나 신규 등록농지를 지급대상에서 제외하고 ②부부 합산 기준 연간 3,500만원 이상의 농외소득이 있는 농가를 제외하며 ③개인 8㏊, 법인 50㏊의 한도를 넘지 않아야 지급하는 지급상한의 설정 등 세가지다.

    개선(안)의 핵심을 이루는 지급대상 범위를 중심으로 타당성을 검토하고 소견을 제시해두고자 한다. 먼저 개선(안)은 제도시행 2년에 불과한 짧은 경험을 토대로 두달 남짓한 검토를 거쳐 성안된 것이어서 자칫 졸속행정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함으로써 또 하나의 농정불신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좀더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토를 거쳐 근본적인 제도 개편안을 마련하는 편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행정실무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운영 개선은 선의의 피해자를 줄이는 고려 아래 별도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제도 개편에 앞서 제도의 성격이나 제도가 지향하는 기본목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서 개선(안)은 상당한 오해에 입각하고 있는 것 같다. 현행 쌀소득보전직불 가운데 고정직불은 논의 환경보전기능에 대한 공적 지불을 뜻하는 환경보전 목적의 직불이지만, 변동직불은 쌀가격 하락에 따른 소득 감소를 완화하기 위한 소득보전 목적의 이전지불이라는 이질적 요소가 혼재돼 있어 세계무역기구(WTO)의 보조금 분류에서도 전자는 허용보조, 후자는 감축대상보조로 구분돼 있다.

    이와 같은 복합적 성격의 쌀직불을 단순히 ‘소득보전’이라는 용어 아래 제도의 본질을 왜곡해서 형평성을 추구하는 복지시책으로 규정하는 정부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현행 쌀직불제는 반세기 이상에 걸쳐 쌀산업 보호장치 역할을 해왔던 수매제의 폐지와 2015년 이후 관세화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쌀산업정책으로 도입된 것이지 형평 추구의 복지시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개선(안)은 쌀산업의 규모화와 전업화를 통한 경쟁력 향상이라는 시대적 요구나 규제 완화를 통한 창의적 경영의 육성 지원이라는 산업정책의 기본 원리에 역행해 불필요한 규제와 간섭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쟁을 통한 쌀산업 발전이라는 기본 방향을 몰각한 근시안적 태도를 보면서 우리 농정의 현주소와 비전이 무엇인지 근본적 의문을 갖게 한다.

    그 어떤 치밀한 논리보다도 지난번 공청회의 방청석에서 나왔던 생산농민들의 몇마디 소박한 발언들이 개선(안)의 허점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기업이 돈많이 번다고 상한제 둡니까?’ ‘앞으로 대농의 수가 더 많아질 테니 대농 기준에 맞는 정책을 펴야’ ‘농림부는 타 부처 눈치나 볼 것이 아니라 농민에게 보탬이 되고자 하는 자세로 정책입안에 임해야 한다’ 등의 내용이다. 

    *이글은 2007년 10월 1일 농민신문에 등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