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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실효성 있는 농업소득 보장제도가 필요하다 l 하승수 공익별률센터 농본 대표, 지역재단 자문위원
    • 작성일2024/10/25 14:30
    • 조회 7
    쌀만 지원하지 않고 다른 주요 농산물로 지원 범위를 넓히면 형평성 시비도 없을 수 있다. 재정소요가 문제라면, 정부가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서 더 노력하면 된다. 가격이 안정되면 그만큼 정부가 차액지원해야 할 재정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모든 물가가 올랐는데, 쌀값만 떨어졌다. 생산비는 올랐는데 쌀값은 떨어졌으니, 농민들의 농업소득도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뒤늦게 시장격리 등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떨어진 쌀값은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정부는 쌀값이 폭락해서 농민들이 벼농사 짓는 것을 포기하기를 바라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늑장대책, 찔끔찔끔 대책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말끝마다 ‘민생’을 얘기하는데, 농민들은 ‘민생’ 정책의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것같다. 민생의 핵심은 먹고 살 수 있도록 소득을 보장하는 것인데, 농민들의 소득 보장에 대해서는 미온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오르는 폭이 등락할 수는 있지만, 꾸준히 상승해 왔다. 물론 최저임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사용자측은 최저임금 상승폭을 낮추려고 하고, 노동자측은 최저임금을 더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고 해도, 물가가 상승하는데 최저임금이 하락하는 상황은 나오기 힘들 것이다. 최저임금이라는 것이 노동자들이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농민들의 가장 보편적인 소득원이라고 할 수 있는 쌀값은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 떨어지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질 수 있다. 쌀값이 떨어지면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다른 장치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장치는 사라져버렸다. 

    2019년 이전에 존재했던 변동직불제가 쌀값 하락에 대한 최소한의 소득보장 장치였는데, 그걸 폐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변동직불제는 국회가 정한 목표가격 이하로 쌀값이 떨어지면 일정 수준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소득안정 정책이었다. 2019년까지는 변동직불제가 쌀값 하락에 대한 안전장치로 기능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2020년 예산부담 등을 이유로 변동직불제를 폐지했다. 

    그 이후의 상황은 어떤가? 쌀값 폭락 사태가 발생하는데도, 소득보장 장치가 없다보니 농업소득도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급기야 올해는 쌀값 폭락에 벼멸구 피해 등으로 인해 농민들은 이중삼중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변동직불제 폐지가 낳은 부작용 중 하나는, 정부가 쌀값을 지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것이다. 변동직불제가 있을 때는 쌀값이 폭락하면 그만큼 정부가 변동직불금을 더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쌀값폭락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변동직불제가 폐지된 이후에는 정부가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늑장 대책을 내놓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국회에는 쌀값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에는 생산 농민들에 그 차액을 지급하는 법안들이 여럿 발의되어 있다. 정부는 이미 폐지된 변동직불금 제도와 유사한 제도라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폐지된 제도라고 하더라도, 그 제도가 옳았다면 부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정부는 변동직불금을 폐지하면서 ‘자동 시장격리’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2021년 풍년이 들어서 쌀값 하락이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시장격리 조치를 제때 취하지 않았다. 정부가 약속을 어겨놓고, 이제 와서 농민들의 소득 보장을 위한 제도 도입에 반대한다는 것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간에 농민들의 농업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실효성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기준가격을 정하고 그 미만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할 때 차액을 지원하는 것은 농업소득 보장을 위해 필요한 제도이다. 쌀만 지원하지 않고 다른 주요 농산물들에 대해서도 지원 범위를 넓히면 형평성 시비도 없을 수 있다. 재정소요가 문제라면, 정부가 농산물 가격안정을 위해서 더 노력하면 된다. 가격이 안정되면 그만큼 정부가 차액지원(기준가격에 미달할 경우에 차액을 지원하는 것)해야 할 재정규모도 줄어들 것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이미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주요농산물 가격 안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서 시장가격이 기준가격에 미달하는 경우 차액을 지원하는 제도를 지방자치 차원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도 하는데, 국가라고 해서 못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농업소득이 보장되어야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래야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야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에도 대비할 수 있다. 기후위기는 심각해지고 국제정세가 날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식량자급 기반도 없이 국민의 생존을 외부에 의존한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얘기이다. 

    출처 : 한국농어민신문(https://www.agrine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1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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