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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칼럼

    농촌정책의 성패, `주민자치' | 유정규 행복의성지원센터장, 지역재단 이사
    • 작성일2024/10/27 15:29
    • 조회 14
    지금까지 많은 농촌정책들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보통, 어떤 정책의 성공과 실패는 추진 주체의 의지와 역량에 따라 좌우된다고 한다. 즉, 지역주민의 추진 의지와 역량이 있어야 그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추진의지가 그 정책에 대한 주민 요구의 반영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면, 주민의 요구는 주민 스스로 자기 지역의 현실을 진단하고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의지가 있을 때 구체화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주민 스스로 책임의식을 갖고 지역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방안을 강구해 나가는 시스템 즉, ‘주민자치’가 곧 정책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주민자치가 담보되지 않을 때는 주민들의 추진 의지도 낮고, 추진역량을 갖추려는 노력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49년 8월 15일 시행된 지방자치법에서는 서울특별시·도(광역), 시·읍·면(기초)을 지방자치단체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읍·면에 지방의회를 구성하고, 읍·면장은 지방의회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최초의 읍·면의회 의원선거가 시행됐고, 1956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읍·면장 직선제로 바뀌었다. 이처럼 1, 2공화국에서는 읍·면을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제 실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으며, 주민자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이 시행됨에 따라 읍·면은 자치단체로서의 법인격을 잃고 군(郡)의 단순한 하부 행정기관으로 전락했고, 풀뿌리 주민자치가 원천적으로 차단됐다. 이후 1991년 6월 20일 지방의회의원선거, 1995년 6월 27일 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선거 실시에 따라 지방자치제가 부활되긴 했지만 읍·면·동 단위의 주민자치는 되살아나지 못했고, 1999년 이른바 읍·면·동 기능전환 추진으로 제증명발급 등의 민원업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무가 시·군·구로 이관됨으로써 읍·면·동의 기능도 크게 축소되고 말았다. 그 후 2013년 5월 제정·시행된「지방분권 및 지방행정체제개편에 관한 특별법」에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위한 규정이 마련됐지만 아직도 여전히 주민자치는 멀기만 하다.

    2022년 말 기준, 전국 3524개의 읍·면·동 중에 형식적이나마 주민자치회가 설치·운영되고 있는 곳은 1385개로 전체의 39.3%다. 세종(100%), 인천(91.6%), 경남(64.9%), 서울(62.9%), 광주·대전(61%), 경기(57.3%), 충남(51.4%)만 전체 읍·면·동의 절반 이상에 주민자치회가 설치, 운영되고 있을 뿐 대구(4.2%), 전북(4.9%), 경북(8.8%)의 주민자치회 설치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북의 경우 전체 330개 읍·면·동 중 주민자치회가 설치돼 있는 읍·면·동은 29개(의성 18개, 안동 11개)에 불과하다. 경북 최대도시인 포항시를 비롯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주민자치회가 전무한 상황이다. 농촌지역의 경우 주민자치는 더욱 요원한 상황이다. 의성군의 경우 전체 읍·면에 주민자치회가 설치·운영되고 있지만 고령화(2024년 9월말 현재 의성군 고령화율 61.2%)와 과소화, 오랜 기간 동안 익숙해진 행정 중심적 사고방식과 관행 등으로 실질적인 주민자치는 여전히 요원한 상황이다. 하물며, 주민자치회조차 없는 농촌지역의 자치 의식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주민 스스로가 자기 지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찾고 해결하려는 의지 즉, 자치 의식이 부족하고, 주민의 부족한 자치 의식을 촉진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에서는 주민과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정책(사업)을 만들고, 시행해 온 것이다. 지자체에서는 정책(사업)의 성공적 추진보다는 더 많은 정책(사업)을 유치하는데 몰두해 왔고 주민들은 그것을 단체장의 업적으로 평가해 왔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농촌정책의 성공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농촌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 또한 영원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구 감소지역 지원 특별법」,「지역 농림어업 발전사업 협력촉진에 관한 법률」,「농촌공간의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지역 공동체기반 경제‧사회서비스 활성화에 관한 법률」은 모두 현 정부 들어 제정·시행된 농촌 관련 법률이다. 이러한 법률들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주민들의 자치 의식을 일깨우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적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 왜, 지금까지 시행된 무수히 많은 농촌정책들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중도에 폐기되고, 또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서 앞선 정책의 실패를 덮었다는 비판을 언제까지 받을 것인가? 주민도 정부도 이제는 변화해야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출처 : 한국농정신문(https://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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